〔카페★里仁〕 사라지는 기억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이들 앞에서
여름 햇살이 눈 부신 오후 푸르름이 울창한 나무 아래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나이가 제법 든 한 노인(老人)이 눈에 들어온다. 엷은 미소를 머금은 그는 추억에 잠기며 젊은 날의 분주함이 사라지고, 어딘가를 향해 바삐 갈 일도 없고, 누군가에게 불려 가야 할 다급한 상황도 없어 혼자만의 이 시간을 누리는 듯하다.
與君俱老也(여군구로야) 그대와 나 다 함께 늙어가니
自問老何如(자문로하여) 늙음이 뭔가 스스로 묻게 되지
眼澀夜先臥(안삽야선와) 눈이 뻑뻑해져 밤엔 잠자리에 일찍 들고
頭慵朝未梳(두용조미소) 머리 손질에 게을러져 아침엔 빗질도 않고
有時扶杖出(유시부장출) 때때로 지팡이 의지해 문을 나서나
盡日閉門居(진일폐문거) 종일토록 문 닫고 집 안에 있네
懶照新磨鏡(나조신마경) 막 닦은 거울 보는 것도 싫어지고
休看小字書(휴간소자서) 글 작은 책 읽는 건 그만둬 버려
情於故人重(정어고인중) 오랜 친구에 대한 마음 소중해도
跡共少年疏(적공소년소) 젊은시절 자취는 멀어져 가고
唯是閒談興(유시한담흥) 이런저런 이야기하던 흥취만은
相逢尚有餘(상봉상유여) 우리 만나면 아직 그대로 있겠지
(〈詠老贈夢得늙음을 읊으며 몽득에게 주다〉/白居易)
누구나 빛나는 청춘(靑春)에 영원히 머물러 있지 않고 서서히 나이가 들어가며 세상을 살다가 떠나게 된다. 그리고 노인의 반열(班列)에 들어서게 되면 노화(老化)라는 보편적인 현상이 시작되면서 모든 면에서 쇠하고 느려지고 더뎌지는 것 또한 누구나 피할 수 없게 된다.
노년(老年)의 삶을 보게 되면 요동치던 많은 마음과 바램과 현실적인 집착(執着)에서 자유로워지며 자신과의 평화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고, 불안(不安)한 생각에 사로잡히며 더 지키고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족이나 친구가 하나둘 떠나며 말을 건넬 사람이 없다는 현실에 쓸쓸해하며 깊은 외로움에 결핍(缺乏)을 실감하며 힘겨워 하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안전 안내문자’가 울리며 손안에 발 빠른 정보(情報)가 거침없이 전달돼 오는 세상이다. 그런데 이런 문자의 내용은 대부분이 노령층에 관한 인적(人的) 사항이 나열되며 급급하게 사람을 찾는 알림이다. 고령화(高齡化) 사회로의 급속한 진입과 함께 노화가 가져오는 다양한 문제가 점점 현실화되는 것을 실감(實感)하게 한다……
노화 현상으로 점점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어두워지고, 뼈 마디마디도 삐걱거리는 증세가 몸에서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아직은 건강이 유지되고 있을 때 여러모로 궁리(窮理)하며 덜 불편하고 덜 고통스럽게 노년을 맞이하고 보내기 위해 소홀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자기의 생각과 결심(決心)과 의지(意志)와 상관없이 기억이 지워지는 병적(病的) 현상 앞에서는 스스로 내놓을 답이 없게 되는 것이다.
고령화 인구가 증가(增加)하는 이 시대에 요즘 흔히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을 마주하게 되기도 하고 때론 가까운 사람이나 가족이 아니어도 작은 도움이라도 베풀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 곁에 누군가는 기억이라는 소중한 조각들을 하나씩 놓아야 하는 때가 오는 치매(癡呆) 환자가 늘면서 그들을 위한 가족들의 돌봄 지식이나 노력도 끊임없이 행해지는 가운데 국가적 의료 차원이 확충되며 시설과 종사자도 구체화되면서 돌봄이 좀 더 촘촘해지고 있다.
마주하는 치매 환자를 매일 대하며 직접적으로 돌보는 사람들은 반복(反復)되는 질문(質問)과 행동(行動)에 지치기도 하겠지만, 그 뒤에 숨겨진 외로움과 불안을 읽어내는 배려(配慮)로 “老吾老以及人之老(우리 집 어른을 대하듯 남의 어른에게 하라)/ 《孟子》” 하는 마음가짐을 잃지 않아야 할 텐데……
우리가 명심(銘心)해야 하는 것은 돌봄이 그저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눈가에 세월이 쌓인 주름과 함께 그들의 눈빛에 때로 혼란(混亂)과 두려움이 스미기에 그 순간에 따뜻함을 나누며 존중하며 마음의 안정(安靜)을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한때 찬란(燦爛)하게 빛나던 그들의 기억들이 서서히 희미(稀微)해지며 안개 속에 감춰진 듯해도 그 안에는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삶의 정수(精髓)를 잃어가며 그 혼란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건네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따스한 눈길 하나는 작은 빛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