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里仁〕 가는 세월 불어오는 바람 앞에서 소망한다

2023-11-22     장성미 칼럼니스트
출처 Unsplash

찬란했던 햇살이 계절을 따라 기울며 그 뜨거웠던 열기(熱氣)를 몰아가고 생기(生氣)가 넘쳐나며 울창하던 숲도 피어나던 수많은 꽃들도 점점 사그라지며 그 빛을 잃으며 가을의 끝을 향해 가고있다. 그래도 소슬바람 불어오는 가을을 마다하지않고 이 계절 끝까지 은은한 꽃 향기를 전하며 피어있는 국화가 아직도 벗하고 있다.

이 꽃 하나가 주는 시절의 정취(情趣)를 누리면 사람들은 여유를 더하게 되고 넉넉한 품성(品性)이 살아나며 서로를 향해 더 많은 사랑을 실천하려 하기도 한다.

가을이 깊어지며 계절의 꽃인 국화의 절정(絶頂)을 마음껏 즐겨야 할 시간에 그 감흥(感興)을 잃게 만드는 아픈 일이……

寒花開已盡(한화개이진) 가을 꽃들 피다가 다 지는데

菊蕊獨盈枝(국예독영지) 국화만 무성히 피어 난다

舊摘人頻異(구적인빈이) 예전처럼 꽃을 따러 빈번이 오던 이들

輕香酒暫隨(경향주잠수) 은은한 술 향기를 쫓아 가버리는구나

 

地偏初衣夾(지편초의협)  멀리 외진 데서 새로 겹옷 꺼내 입고 

山擁更登危(산옹갱등위)  산으로 빙둘린 더 높은 곳 올랐지만

 

萬國皆戎馬(만국개융마) 나라가 온통 전쟁에 휩싸여져 버려

酣歌淚欲垂(감가루욕수) 흥겨운 노래에도 눈물이 떨어진다

〈雲安九日鄭十八攜酒陪諸公宴〉 운안에서 중양절에 술 가져온 정건과 여럿이 어울린 잔치에서/ 杜甫

세월이 한없이 가도 때가 되면 국화는 변함없이 피어나고…… 저 옛날 그때에 거기서 모든 전쟁이 끝나버렸다면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운 낙원(樂園) 같을까!

하지만 세상 안 곳곳에서 인류의 지도(地圖)에는 나라와 나라간에 새로운 선(線)을 그으며 흐르는 역사 속에 전쟁이 멈춘 적 없고 나라마다 자국(自國)의 의(義)를 내세우며 전쟁을 일으킬 때 마다 늘 당위성을 강하게 외친다.

지금도 느닷없는 전쟁의 도가니에 휘둘리며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선상에서 자기의 의지(意志)로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이 불안과 아픔 그리고 공포에 놓인 채 오늘 마실 물마저 찾아나서야 하는 시나이반도 북동쪽 ‘가자’에서 잔인한 희생(犧牲)을 당하는 주검이 끝모르게 쌓여만 가고있다.

몇 해전 봄이 오려는 때에 시작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다시 찬서리가 내리는데도 아직 끝날 줄 모르는 형국인데, 풍요로운 가을이 시작되던 길목에서 하마스의 선제공격(先制攻擊)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활화산처럼 불붙어 극(極)으로 치닫고 있다. 그동안 나름대로 평화를 지키며 살아왔던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른 계산된 욕심에서 서로를 향해 용서 할 수 없는 잔악(殘惡)한 살상(殺傷)을 맘껏 저지르고 있다.

그 전장(戰場)에서 들려오는 뉴스로 인간의 끔찍함을 자꾸 계수(計數)하기만 하면서 인류가 서로를 향한 비정(非情)하고 무뢰한 짓거리에 대하여 과연 어디까지 지켜보아야 하는건지 숨막힐 듯 힘겹다.

비록 인간이 존재하는 곳에 전쟁이 쉼없이 있어왔지만 그것이 인간세상의 마지막 답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다 알고있다.

공멸(攻滅) 당하지 않으려는 생존(生存)의 이유로 때론 전쟁으로만 해결해야할 상황이 있다는 주장처럼 상앙(商鞅)의 전쟁 만능(萬能)의 관점에서 ‘전쟁으로 전쟁을 끝장낸다(以戰息戰)’는 논리로 전쟁을 정당화 하려고 하기도 한다.

또는 강자(强者)가 약자(弱者)를 향해 각각의 우리라는 무리들이 더 많이 취(取)하려고, 더 영토(領土)를 넓히려고, 더 지배(支配)하려고, 더 풍성(豊盛)하게 누리려는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여 그럴싸한 명분(名分)을 앞세우며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불의(不義)한 전쟁을 막아보려고 묵자(墨子)는 겸애(兼愛)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남을 자신처럼 똑같이 위하라(爲彼猶爲己)' 하면서 약육강식(弱肉强食)으로 점철되던 시대에 평화를 위하여 수고와 고난을 마다하지 않고 몸소 그 현장으로 달려가 실천하기를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에 ‘좋은 전쟁’, ‘착한 전쟁’이란 없는 것이다. 결국 전쟁으로 현존(現存)하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끊임없는 전쟁의 악순환(惡循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혈연(血緣)과 국가(國家), 종교(宗敎) 등의 소속(所屬)에 따라 다른 사람을 차별적(差別的)으로 대하는 별애(別愛)의 관념 만을 내세우지 말고, 국가든 혈연이든 소속을 따지지 말고 동등(同等)하게 대하는 겸애를 바탕으로 하는 공존(共存)을 고민하며 세상의 평화를 위하여 인류가 함께 간구(懇求)하며 실천해야 하고, 또한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유린(蹂躪)하는 탐욕스런 범죄인 전쟁도 멈추어야 한다.

 


장성미 (전) 경성대학교 중국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