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봄맞이

2025-04-25     김시래 칼럼니스트
Image by Jill Wellington from Pixabay

신촌 이대앞 거리에 만개했던 벚꽃이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졌다. 비까지 내리면 길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추레한 흔적만 남길 것이다. 봄날의 화양연화가 샐러리맨의 비애로 변하는 순간이다. 사물은 천개의 모습을 함의한다. 한낮의 숲은 싱그러운 생명력을 대변하지만 한밤의 숲은 주린 배를 채우려는 포식자들의 사냥터다. 무엇이 무엇이 될 가능성은 사방에 널려있다. 골라쓰는 사람 마음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단지 그림일 뿐 파이프가 아니라고 했다. 사람들의 기계적인 사고 방식을 경계한 것이다.

사물의 이름이나 의미는 약속에 불과하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을 버리면 얼마든지 새로운 개념이 탄생한다. 범죄자의 망치와 벌목공의 망치는 전혀 다른 의미다. 하나의 대상에서 다양한 개념을 떠올려야 한다. 작고하신 이어령씨의 지적대로 가방보다는 보자기의 시선을 배워야한다. 가방은 운반하는데만 쓰인다. 보자기는 여기에 더해 얼굴을 가리면 복면이 되고 손목을 보호하면 붕대가 된다.  이런 사고 능력의 유연함은 어디서 오는걸까? 

중간고사 리포트의 주제는 ‘25년 이 봄, 당신의 봄은 무엇입니까?‘ 였다. 트렌드를 연결해서 발상하는 습관을 위해 종종 제시하는 과제였다.

‘거리엔 벚꽃이 만개했지만 제 앞엔 커피가 가득합니다. 그래서 제겐 ’커피만잔‘입니다.‘ 란 대답이 실습창에 올라왔다. 커피잔이 쌓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의 대답이었다. 봄이 ‘겨울’이라는 학생도 있었다. 딸기를 좋아하는데 겨울딸기는 봄에 맛있다고 하며 몰랐던 사실까지 알려주었다. 봄이 ’자리잡기‘라는 학생은 꽃구경을 하러 공원에 갔을 때나 도서관에 가도 좋은 자리를 잡으려는 싸움이 치열하다고 했다. 뭐든 열정적으로 해낼 학생이었다. 호수앞 텅빈 벤취 사진에 ’이걸 나혼자 봄‘이란 글을 써서 올린 학생도 있었다. ‘쉽지 않은 봄’이라며 학생들의 웃음까지 끌어냈다. 재치만점이었다. 은행에서 흔히 보는 대기 번호표 사진옆에 ’접속대기‘란 헤드라인을 쓴 학생은 4학년 취준생이였고 빨간 콜라 캔옆에 ’딸깍‘이란 카피를 써서 대학생활의 설레임을 표현한 학생은 신입생이었다.‘4,1,2,3’ 란 철학적 해석을 붙인 학생은 잔나비의 여름,가을,겨울,그리고 봄이란 노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여름처럼 뜨겁게 시작했다 봄의 아지랭이처럼 안정감을 누리며 여생을 끝내고 싶다는 남학생은 음악을 좋아했다. ’사이다‘라고 대답한 학생도 있었다. ‘야구도 터지고 사이다도 터지고 나랑 야구는 그런 사이다’라며 야구장에서 응원하다 사이다를 쏟아버린 자신의 자리를 사진에 올렸다. 무용학과 학생의 봄은 ‘쳇바퀴’였다. 봄학기 내내 정신없이 회전 동작에 몰두하는 자신의 모습을 영상에 올렸다. 하이볼이란 학생도 있었다. 얼굴에 떨어진 벚꽃 사진에 ’벚꽃 하나가 내 볼을 때리며 내게 말했다. 하이(Hi) 볼!‘이라고 적어놓았다. 빙그레 웃는 모습이 낙관주의자로 보였다.

학생들의 대답을 곱씹어보라. 생각은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떠날수 없다. 생각은 생활의 반영이다. 새로운 생활이 남다른 생각을 낳는다. 이 봄, 일상의 습관부터 리뉴얼하자. 미식가가 감동할 요리는 냉장고속 재료부터 신선해야 탄생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