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이나 뜨거웠던 올여름 어린 제자(弟子)들을 가르치기에 열심이었던 한 젊은 교사(敎師)가 무너진 교권(敎權)으로 인하여 절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허망(虛妄)한 일이 발생하였고, 뒤이어 여기저기서 몇몇 교사들이 같은 선택의 길로 갔다는 안타깝고 불행(不幸)한 소식이 자꾸 들려온다.
때론 교육철학이 확립되지 않은 교사들의 무책임한 언행(言行)으로 인하여 아직은 연약한 학생들이 상처를 입고 부당(不當)한 대우(待遇)를 받거나 인권침해를 당하는 경우도 적지않게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 직업에 임하며 사명감(使命感)을 갖고 남다른 포부와 긍지로 가르치는 기쁨 속에 성장하는 제자들을 돌보며 교단(敎壇)에 선다. 아울러 배움의 길에서 달려가고 있는 학생들은 그들을 사표(師表)삼아 배우며 따르게 된다.
그런데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는 경의(敬意)의 표현이 어쩌다 박물관(博物館)에나 두어야 할 박제(剝製)된 생명처럼 존경을 잃게 되고, 교사의 훈육(訓育)은 사그라지며 무시되거나 내동댕이쳐지는 심각한 현실에 놓이게 되었단 말인가!
물론 그간에 여러가지 사건과 연유(緣由)가 부단(不斷)히 교육계에 있었지만, 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이렇게까지 교권이 실추(失墜)하게 되었을까? 누구의 책임일까? 어디서부터 해결(解決)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여기서 자녀가 인생을 살아갈 때 어떻게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이 옳을까를 고민(苦悶)하던 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라가 보자.
중국 당(唐)나라 말기에 명문가(名門家)의 후손이며 그 시대 영향력 있는 문인(文人)으로서 여러 방면에 업적(業績)을 쌓던 시인 두목(杜牧)이 정치적 상황 때문에 지방을 떠돌며 벼슬을 하다가 마침내 중앙의 주요 관직(官職)인 중서사인(中書舍人)에 임명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중병(重病)이 들게 되었다.
그때 장남은 아직 십대 중반에 불과하였고 나머지 자녀들은 더 어렸다. 갑자기 병이 들게 되니 성장해야 할 어린 아이들을 둔 아버지로서 본인 없이 자라 갈 아이들의 미래와 훈육에 대한 많은 염려(念慮)가 오갔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자녀들을 생각하며 시를 통해 유언(遺言)을 하였다.
그는 장남인 조사(曹師)를 비롯한 자녀들에게 사람이 왜 배워야 하고 어떻게 공부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일깨움을 남겼다.
만물(萬物)이란 아름답고 추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은 미추(美醜)만을 논할 것이 아니라 배움을 따지고 살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배우며 공부 할 때 글만 익히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그 배움의 뿌리를 찾아서 탐구(探究)해야 인생의 아름다운 꽃을 딸 수 있다고 일렀다. 또한 사람됨에서 학문(學問)의 원천(源泉)도 나오게 되니 공부를 할 때 배움의 근본(根本)을 튼튼하게 다져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면 인생이란 나무는 가지와 잎이 그 자양분을 흠뻑 머금게 돼 무성해 질 수 있다며 이것을 소홀(疏忽)히 말고 새겨서 실천하며 사람의 도리(道理)를 다하며 집안이 행복해 지기를 바랬다.
萬物有醜好(만물유추호) 세상 만물 추하고 아름답고
各一姿狀分(각일자상분) 각각의 모습으로 구분되지
唯人即不爾(유인즉불이) 사람만은 그렇지 않아
學與不學論(학여불학론) 배웠다 못 배웠다고 말하는데
學非探其花(학비탐기화) 배움은 겉치레 좇는게 아니고
要自撥其根(요자발기근) 그 근원을 밝혀가는 것이지
孝友與誠實(효우여성실) 부모 공경하고 형제 우애하며 남에게 진실해라
而不忘爾言(이불망이언) 너희가 나의 이 말 잊지 말기를
根本既深實(근본기심실) 뿌리가 깊고 튼실하면
柯葉自滋繁(가엽자자번) 가지와 잎은 절로 무성해지지
念爾無忽此(념이무홀차) 너희 이 가르침 소홀이 여기지 말고
期以慶吾門(기이경오문) 우리 가문을 빛내주기 바란다
〈留誨曹師等詩〉 아이들에게 남기는 가르침 / 杜牧(두목)
그렇다! 사람으로 세상에 온 후에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배움이란 그 기본이 배제(排除) 될 수 없는 것이 삶의 현실이다.
그래서 학력과 지위 고하(高下)는 물론 경제적 형편을 떠나서 부모(父母) 된 사람들은 자라나는 자녀를 훈육하는 일이 삶에서 가장 큰 숙제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한 인격(人格)이 완성(完成)되려면 다방면(多方面)에서 다양(多樣)하게 여러 교육을 받아야 한다. 특히 가정교육(家庭敎育)과 공교육(公敎育)이 기본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며 사회에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잘살아가려면 이런 교육은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더더욱 사회의 시스템에 속한 보편적인 일원(一員)의 기본적인 인격체를 갖추려면 태어나면서부터 성장(成長)하는 가운데 부단한 훈육을 받아야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요사이 일고있는 교육 현장의 문제 중에는 일부 부모들의 몰지각하고 교양(敎養) 없고 시비(是非)를 분별 못하는 비뚤어진 자녀 사랑 때문에 형성된 훈육관(訓育觀)의 결과가 절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는 형국이 펼쳐지고 있다.
교육을 받기 위해 학교라는 사회의 출발지에 들어온 아이들을 보게 되면 가정에서 훈육되어 온 모습이 거울에 비추듯 예외없이 언행에 묻어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참으로 자녀를 아낀다면 인간교육의 출발지인 가정에서 성장의 때에 맞추어 양육(養育)과 교육을 지혜(智慧)롭게 해야한다. 만약 그런 가르침 없이 내 아이가 귀(貴)하다고 원하는 대로 하자는 대로 옳고 그름을 가르치지도 않고 질서의 선후(先後)를 따지지도 않고 사람의 도리를 알려주지도 않고 무조건 들어주기만 하면, 성숙한 인격 형성을 위한 교육이 제대로 되지않아 장차 조화롭게 사회 구성원의 대열에 어울리지 못하거나 자기만을 위하고 들여다보며 그 안에 갇혀버리는 뒤틀린 삶을 살아 갈 수도 있다.
사랑하는 자녀가 긴 인생의 길에서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면 그 아이들이 학교 교육의 현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 놓기에 앞서 사회공동체 안에서 화평(和平)하게 살아갈 근본이 되는 ‘孝友與誠實’의 가르침을 먼저 고심하는 현명(賢明)한 부모가 되기 바란다.
장성미 (전) 경성대학교 중국학과 초빙교수
